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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작년에도 금값은 꾸준히 상승했지만, 올해 들어 상승 속도가 더욱 빨라졌는데요. 금값이 이렇게까지 오른 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으로 경제적,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금은 위기의 순간에서 가격이 올라가는 안전자산으로 꼽힙니다. 전쟁과 금융위기 같은 혼란이 찾아왔을 때 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금값이 항상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은 최근 금값 상승의 원인과 금의 역사적 의미, 그리고 금 투자에 대한 오해까지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사상 최고치 기록한 금, 이유는?
트럼프 재선과 정치적 불확실성
최근 금값 급등을 이끄는 가장 큰 요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위협입니다. 1기 집권 당시 중국을 상대로 강력한 관세 정책을 시행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무역전쟁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요. 특히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뿐만 아니라 캐나다, 멕시코 등 전통적인 동맹국들을 대상으로도 '관세폭탄'을 예고한 만큼 파장이 더 클 것이란 분석입니다.
미국이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전반적으로 인상하면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릴 가능성이 큽니다. 기업들은 원자재와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요. 이렇게 정치 ·경제적 리스크가 커지면 투자자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보다 안전한 투자처를 찾게 됩니다. 금은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경제와 금융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수요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2024년 말부터 글로벌 경제 둔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됩니다. 높은 금리와 기업의 투자 감소로 경제 성장이 둔화하는데요. 미국 경제는 견조한 회복세를 이어가긴 하지만, 작년 4분기 성장률(2.3%)이 3분기 성장률(3.1%)과 예상치(2.6~2.7%)를 밑돌며 다소 둔화하는 모습을 보였죠. 일부 전문가는 올해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불확실성으로 미국 경제가 2%대 초반의 성장률을 보이리란 전망도 내놓습니다.
유럽도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독일, 프랑스를 비롯한 주요 유럽 국가의 경제 성장률이 둔화하면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데요. 여기에 중국의 경기 둔화도 불안 요소로 꼽힙니다. 중국의 부동산 위기 심화로 내수가 침체하면서 글로벌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죠.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는 금이나 미국 국채 같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의 비중을 늘리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
2023~2024년, 전 세계 중앙은행은 높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기대만큼 물가가 빠르게 안정되지 않았는데요. 2025년에도 미국과 유럽의 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목표치(2%)를 웃돌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그동안 투자자들은 금을 인플레이션 헤지(물가 상승에 따른 화폐가치 하락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금은 이자나 배당을 지급하지 않지만, 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가 떨어질 때도 가치가 유지되거나 상승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렇게 물가 상승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에는 금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큽니다.
중앙은행의 금 매입 증가
금값 상승의 또 다른 이유는 각국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금 매입입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금 보유량을 지속적으로 늘리며, 이는 미국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해석되는데요.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각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량은 5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금은 어떻게 안전자산이 됐을까?
금은 역사적으로 위기의 순간마다 빛을 발하는 안전자산이었습니다. 금은 수천 년 동안 인류가 가치를 인정해 온 자산이며, 경제 위기와 정치적 불안 속에서도 비교적 강한 모습을 보여 왔는데요. 금은 언제부터 안전자산으로 인정받았을까요?
고대부터 인정받은 가치 저장 수단
금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가치 저장 수단 중 하나입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들이 금을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사용했고, 로마 제국에서는 금화가 주요 화폐로 쓰였죠. 당시 사람들은 금의 부식되지 않는 성질과 희소성을 높이 평가했으며, 시간이 지나도 가치를 유지하는 특성 덕분에 금을 화폐로 활용하게 됐습니다.
이후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대부분의 국가는 금본위제(Gold Standard)를 운용했습니다. 금본위제는 각국의 화폐 가치를 금과 연계하는 제도로,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의 양만큼만 화폐를 발행할 수 있도록 했는데요. 이 시스템 덕분에 금은 안정적인 가치 저장 수단으로 자리 잡았고, 사람들은 금을 신뢰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금본위제는 점차 힘을 잃어갔습니다. 1929년 대공황 이후 각국 정부는 경제 회복을 위해 더 많은 화폐를 발행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금본위제를 폐지하거나 금과의 연계를 약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였는데요. 1971년, 닉슨 대통령이 미국 달러와 금의 연계를 공식적으로 끊으면서 금본위제는 사실상 폐지됐죠.
하지만, 금이 가치 저장 수단의 역할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습니다. 금본위제가 폐지되면서 각국 정부는 더 이상 금 보유량에 구애받지 않고 화폐를 발행할 수 있게 됐는데요. 이에 따라 통화량이 증가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이때마다 금은 인플레이션을 방어하는 가치 저장 수단(store of value)으로의 역할이 더욱 강조됐습니다.
금이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 이유
희소성: 금은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자원이지만, 채굴할 수 있는 양이 제한적입니다. 무한정 공급되는 것이 아니기에,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유지될 가능성이 큽니다.
내구성: 금은 부식되지 않고 변질되지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화폐나 채권과 달리 시간이 지나도 본래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금의 강점입니다.
독립성: 정부나 금융 시스템의 영향에서 자유롭습니다. 주식이나 채권은 특정 국가의 경제적 상황이나 중앙은행의 정책에 따라 가치가 변동할 수 있지만, 금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갖는 자산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독립적으로 움직입니다.
잔뜩 오른 금값, 금은 정말 안전자산일까?
금은 역사적으로 봐도 안전자산으로 인식됐지만, 그렇다고 항상 가격이 일정하거나 오르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안전자산이라고 하면 흔히 가격 변동성이 적고, 경기 침체나 금융 위기에서도 꾸준히 가치를 유지하는 자산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금은 분명 위기 시기에 강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가치가 일정하게 유지된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금값이 급락했던 사례도 존재하며, 경우에 따라 금이 기대만큼 안전하지 않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금값 급락의 두 사례, 1980년대와 2010년대
1970년대에는 금값이 급등한 시기였습니다. 1971년, 닉슨 대통령이 금본위제를 폐지하면서 미국 달러의 가치가 불안정해졌고, 1973년과 1979년 오일 쇼크로 인해 물가가 급등하면서 많은 투자자가 금을 사들였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급등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급격히 인상했는데요. 1979년부터 1981년까지 미국의 기준금리는 10%에서 20%까지 치솟았는데요. 높은 금리가 적용되면서 투자자들은 금을 보유하기보다는 은행에 돈을 맡겨 이자를 받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죠. 이에 따라 금값은 1980년 1월 온스당 약 850달러에서 1985년 300달러 수준으로 폭락했습니다.
2013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대규모 *양적완화(QE)를 시행했습니다. 이 시기에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 심화를 우려하며 금을 적극적으로 매입했고, 2011년에는 금값이 사상 최고치였던 1,900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양적완화(QE, Quantitative Easing):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국채나 금융 자산을 직접 매입하여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통화정책입니다. 한 마디로, 중앙은행이 돈을 직접 찍어 시장에 푸는 정책이죠.
그러던 2013년, 연준이 양적완화를 축소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금값은 단기간에 폭락했고, 2015년까지 1,000~1,200달러 선까지 떨어졌습니다. 당시에도 금이 안전자산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하고, 연준이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금의 매력도가 낮아졌던 것입니다.
이처럼 금은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거나 경제 위기가 발생할 때는 강세를 보이지만,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이나 경제 상황에 따라 단기간에 급락할 수도 있는 자산입니다.
금과 위험자산의 상관관계
금은 전통적으로 안전자산으로 분류되지만, 때때로 주식시장과 같은 흐름을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경기 회복기에 접어들면 금값이 하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2009~2011년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많은 투자자가 금을 사들이면서 금값이 크게 올랐습니다. 그러나 2009년 하반기부터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금값 상승세가 둔화했습니다. 다시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이런 흐름을 보면 금이 반드시 항상 안전자산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금값은 경제와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때로는 위험자산과 유사한 움직임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금은 언제 안전하고, 언제 위험할까?
금은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을 때, 특히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거나 금융 위기가 발생할 때 강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금리가 높아지거나 경제가 회복될 때는 상대적으로 매력도가 낮아져 가격이 하락할 수 있습니다. 또한, 중앙은행의 정책 변화에 따라 단기적으로 큰 폭의 변동성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금은 단순히 ‘항상 안전한 자산’이 아니라, 경제 상황에 따라 가치가 달라질 수 있는 자산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전망대로라면 올해 금값은 상승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는 중앙은행의 지속적인 금 매입과 연준의 금리 인하,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이 금값을 끌어올릴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 예상합니다. 다만, 골드만삭스는 연말까지 금값이 3,000달러를 돌파할 가능성을 언급한 반면, 일부 기관은 달러 강세와 시장 조정으로 인해 금값이 하락할 수도 있다고 전망하는 등 의견이 갈리긴 하는데요. 역사적으로 금은 불확실성이 커질 때마다 강한 모습을 보여왔던 만큼 2025년에도 글로벌 경제 흐름에 따라 요동칠 수 있는 금값의 흐름을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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