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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철금속 생산 기업 고려아연. 고려아연은 75년 동안 영풍과 동업 관계를 이어오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아연과 비철금속 생산 기업으로 거듭났습니다. 고려아연은 독보적인 제련과 생산 기술을 바탕으로 매년 높은 수익을 올리기도 하는데요. 매년 영업이익이 1,000억 원이 넘는 알짜 기업으로 꼽히죠.

    그런데 최근, 고려아연이 뉴스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다른 이유입니다. 오랫동안 이어진 고려아연과 영풍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인데요. 영풍이 사모펀드 운영사인 MBK파트너스(MBK)와 손을 잡고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확보하겠다고 나섰고, 고려아연은 영풍과 MBK의 경영권 확보 시도를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하죠. 고려아연과 영풍, 왜 재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걸까요?


    한국의 대표 비철금속 기업, 고려아연

     

     

    고려아연, 어떤 기업일까?

    고려아연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비철금속 제련 기업으로, 주로 아연을 생산해서 판매합니다. 아연 제련 과정에서 나오는 금, 은, 동, 황산 등의 부산물도 함께 생산하는 등 수익원이 다양하죠. 현재 비철금속 시장에서 경쟁력이 높기로 유명합니다.

     

    2024년 현재, 고려아연의 자회사는 23개입니다. 미국, 호주, 한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활발하게 사업을 전개하는 중인데요. 매출에서 수출 비중이 약 67%로 상당히 높을 정도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는 기업입니다. 최근에는 이차전지 소재 사업 등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도 적극적인 모습입니다.

     

    아연과 연: 아연과 연은 일상생활은 물론 산업활동에 꼭 필요한 대표적인 비철금속입니다. 아연은 녹이 잘 슬지 않아 철에 입혀 녹을 방지하는 아연도금에 주로 쓰이며, 건축 자재나 배터리에도 활용되는데요. 연은 무겁고 부드러운 성질 덕분에 자동차 배터리나 방사선 차폐에 많이 사용됩니다.

     

     

    새로운 성장 동력 찾자


    2021년 최윤범 회장이 취임하면서 고려아연은 기존 비철금속 제련 중심 사업에서 벗어나 미래 신성장 동력 확보에 집중하겠다는 방향성을 제시했습니다. 이를 위해 이차전지 소재 사업, 특히 전기차 배터리와 연관된 니켈, 리튬 등 배터리 소재 분야에 진출하고, 친환경 사업 및 재생에너지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죠. 이런 계획은 최윤범 회장이 취임 후 발표한 미래 신사업 확장 프로젝트인 ‘트로이카 드라이브’에 잘 담겨있는데요. 트로이카 드라이브는 고려아연의 미래 성장을 이끌 세 가지 핵심 사업 전략을 포함합니다.

     

    • 자원순환 사업: 고려아연은 폐기물 자원 재활용을 통해 금속 자원을 회수하는 친환경 사업에 주력합니다. 대표적으로 자회사인 스틸싸이클과 ZOCV(Zinc Oxide Corporation Vietnam LLC)는 제강분진을 재활용해 아연의 원료인 조산화아연(HZO)과 산화아연(IZO)을 생산하죠. 또한, 페달포인트홀딩스는 전자 폐기물에서 유용한 금속을 추출해 재활용하는 사업을 담당합니다.

     

    • 신재생에너지 및 수소 사업: 자회사 아크 에너지(Ark Energy)를 통해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도 추진합니다. 호주에 위치한 맥킨타이어 풍력발전소의 지분 30%를 확보하며 풍력발전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대표적이죠. 또 다른 자회사인 썬메탈(Sun Metals)은 태양광 발전 설비를 운영하며, 자사 전력의 25%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 이차전지 소재 사업: 이차전지 소재 사업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성장에 대응하는 고려아연의 첨단 소재 분야 진출 전략입니다. 자회사인 켐코(KEMCO)를 통해 이차 전지의 핵심 원료인 황산니켈(NiSO4)을 생산하고 있죠.

     

    최근 실적은 어때?

    고려아연은 금속 가격과 환율 상승에 힘입어 최근 2분기 깜짝 실적을 발표했는데요. 2분기 영업이익이 2,690억 원으로 전년, 전분기 대비 급증했고, 시장의 예상치도 웃돌았죠. 영업이익률은 8.8%로 지난 1분기 대비 1% 상승했습니다. 연결 자회사 영업이익도 2022년 2분기 이후 처음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자회사 SMC는 생산 안정화로 아연 판매량이 늘었습니다. 더불어 서린상사는 영풍과의 저수익 계약이 종료되면서 수익성이 낮은 물량을 처리할 필요가 없어 효율성이 높아졌습니다. 

     

    @고려아연 2분기실적



    고려아연과 영풍그룹은 어떤 사이야?

     

    75년에 걸친 동업

    영풍그룹은 황해도 출신의 고 장병희, 최기호 창업주가 1949년 공동 창업한 기업입니다. 초창기에는 농수산물과 철광석 무역업으로 시작했죠. 이후 1970년, 이들은 석포제련소를 만들어 비철금속 제련업에 진출했고, 1974년 고려아연을 설립해 온산제련소를 만들었습니다. 현재는 후손들이 대를 이어 그룹을 운영하는데요. 장병희 가문은 지주회사 영풍과 영풍문고, 전자 계열사를 맡고 최기호 가문은 고려아연과 비철금속 관련 계열사를 맡는 식으로 동업을 이어왔습니다. 영풍그룹의 지배구조는 여전히 독특합니다. 그룹 회장은 번갈아 가면서 맡고, 주요 계열사 지분도 대부분 공유하는 식입니다.

     

    영풍그룹의 핵심, 고려아연

    영풍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는 장씨 일가가 있는데, 정작 그룹 실적은 대부분 고려아연을 포함한 최씨 일가가 맡은 쪽에서 발생합니다. 반면, 영풍그룹 중 2023년 적자를 낸 상장사 3곳(영풍, 코리아써키트, 시그네틱스)은 모두 장씨 일가가 경영을 맡은 곳입니다. 영풍그룹 영업이익 대부분을 고려아연이 책임는 구조다보니, 최씨 일가의 불만은 점점 커지기 쉬운 구조였죠.

     

    최윤범 회장의 취임

     

    두 가문의 동업관계가 본격적으로 금이 간 것은 지난 2022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취임 이후입니다. 최 회장이 고려아연의 계열분리를 검토하기 시작했는데요. 최 회장은 트로이카 드라이브라 불리는 신재생 에너지, 자원 순환, 이차전지를 포함한 3가지 신사업을 추진하며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척하려 했습니다. 문제는 신사업 진출에 막대한 돈이 든다는 점이었죠. 고려아연은 버는 돈을 신규 사업을 위해 투자하려 했지만, 영풍은 고려아연에 배당 확대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습니다. 그룹 내 다른 부문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돈을 잘 버는 고려아연을 압박한 것입니다. 

    결국, 최 회장은 고려아연의 독립을 추진합니다. 한화그룹과 파트너십을 맺었고 한화그룹이 3자 배정 유상증자로 고려아연의 지분 5%를 취득하게 됐습니다. 한화그룹의 계열사인 한화임팩트가 2021년 1.88% 지분을 매입했던 사실도 이후에 드러났죠. 최대 주주인 영풍에 맞서 자신에게 우호적인 주주를 모집한 것입니다. 이 외에도 최 회장은 LG화학, 현대차 등의 우호지분을 꾸준히 확보하며 경영권 확보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경영권 갈등, 점점 심해지는데

     

    현재 상황은 어때?

    9월 4일 기준, 현재 최윤범 회장 측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33.99%, 영풍 측 지분율은 33.13%로 팽팽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지난 13일 영풍 그룹이 국내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MBK)와 손을 잡고 고려아연 주식 공개 매수에 나섰습니다. 공개매수 단가는 66만 원, 공개 매수 규모는 고려아연 지분 6.98%~14.61%입니다. 최대 2조 원가량의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건데요. 공개 매수가 성공하면 영풍과 MBK는 고려아연 지분의 최대 46%를 손에 넣게 됩니다.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제외하면 경영권을 손에 넣는 것이 가능한 정도죠.

     

    MBK에 경영권이?

    영풍은 MBK와 협력으로 경영권까지 넘기겠다는 입장입니다. 지난 13일, 장씨 가문의 대표인 장형진 영풍 고문은 "지난 75년간 이어져 온 두 가문 공동경영의 시대가 이제 여기서 마무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라며 "MBK파트너스와 같은 기업경영 및 글로벌 투자 전문가에게 지위를 넘기는 것이 창업 일가이자 책임 있는 대주주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는데요. 실제로 장씨가문과 MBK 간 계약 내용을 보면 MBK에 경영권을 넘기는 조항이 있습니다. 장씨가문 지분 중 일부(8.48%)를 MBK가 사들일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거죠. MBK가 8.48%의 지분을 장씨가문에서 사 오면 공개매수로 확보한 기존 14.61%에 합쳐서 장씨가문보다 많은 지분을 확보하게 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MBK와 영풍이 공개 매수로 최소 6.98%의 지분을 사들인다면,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확보할 전망입니다. 고려아연 측은 이를 막기 위해 최소 6%가량의 지분을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데, 최소 1조 원에 달하는 자금이 필요합니다. 이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한국투자증권, 소프트뱅크, 베인캐피털 등 국내외 투자사를 접촉하는 상황이죠. 다만 공개매수 마지막 날인 10월 4일까지 남은 거래일이 7일뿐이라 현실적으로 투자자를 구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와 별개로 고려아연은 공개 매수에 대항하는 목소리를 더욱 강력하게 표출했습니다. 지난 24일, 경영권 분쟁 이후 첫 기자회견을 열고 영풍과 MBK를 겨냥해 "약탈적 투기자본으로부터 회사를 지켜 달라"라고 호소할 정도였죠. 사모펀드 운용사인 MBK가 단기간 경영 성과를 올린 뒤 회사를 비싸게 매각할 것이란 우려를 표한 것입니다. 이에 더해 고려아연 핵심 인력은 경영권이 영풍과 MBK에 넘어간다면 집단 퇴사하겠다는 초강수까지 던졌습니다.

     

    공급망 우려 걱정돼

    실제로 이번 경영권 분쟁을 두고 기업계나 지역사회, 정치권 등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냅니다. 한국앤컴퍼니, 휴스틸, 한국금거래소 등 고려아연의 국내외 고객사 80여 곳은 지난 23일 "사모 펀드는 투자 수익 확보를 위해 독단적 경영을 할 가능성이 크고 향후 투자를 줄일 수 있어 고려아연 기술이 해외에 유출되거나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라고 밝혔는데요. 김두겸 울산시장은 물론 울산 국회의원과 지방의원까지 나서서 고려아연 경영권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물론 MBK는 고려아연을 중국에 팔거나 핵심자산을 단기에 매각하진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국가기간산업이라는 점을 고려해 10년간은 경영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는데요. 하지만, 과거 ING생명 인수한 뒤 6개월 만에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5년 만에 이를 되팔아 200%가 넘는 수익률을 올렸죠. 이런 전례에 비추어 볼 때 MBK의 주장을 100% 신뢰하긴 힘들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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