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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인공지능(AI) 기술이 가져올 변화로 전 세계가 떠들썩한 현재, 관련 업계 종사자는 조금 다른 부분에 집중합니다. 바로 전기인데요. AI는 어마어마한 양의 전력이 필요한 기술입니다. AI의 발전을 위해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죠. “AI 발전을 제약하는 건 변압기와 전력 공급”이라고 언급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AI엔 이전에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라고 말한 샘 올트먼 오픈AI CEO 등 언급이 이어지는 배경입니다.

    전력망의 수요는 계속 늘어나지만, 공급을 늘리는 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지금의 전력망으론 AI 발전의 속도를 감당하기 역부족이란 걱정이 끊이지 않는 배경인데요. 오늘은 AI 열풍을 타고 부상하기 시작한 전력 설비 산업의 동향과 전망

    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전기 없이 불가능한 AI 기술

     

    챗GPT 같은 생성형 AI를 만들고 활용하기 위해선 상상 이상의 연산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에 복잡한 연산을 빠르게 해낼 수 있는 AI반도체와, 데이터 저장 및 처리를 담당하는 데이터센터의 중요성도 큰데요.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는 어마어마한 전력을 소모합니다. 구글 검색에 평균 0.3Wh(와트시)의 전력이 쓰인다면, 챗GPT 검색은 그보다 10배가량 많은 2.9Wh의 전력이 필요하죠. 구글에서 전 세계 하루 약 90억 건의 검색이 이뤄진다고 했을 때, 모든 구글 검색을 생성형 AI로 대체할 경우 필요한 전력량은 아일랜드가 1년간 소비하는 전력량(29.2TWh(테라와트시))에 맞먹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심지어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나 영상을 생성하려면 더 많은 전력이 듭니다.

    연중무휴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데이터센터 역시 전기 먹는 하마입니다. AI 서버의 작동은 물론 이때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한 냉각 팬 가동에 막대한 양의 전력이 소모되는 건데요. 2022년 460Twh였던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은 2026년 최소 1,000TWh로 두 배 이상 훌쩍 뛸 예정입니다. 이는 일본 연간 전력소비량(2022년 939TWh)을 넘어서는 수치죠. 엔비디아가 AI 제품군 생산을 계속 늘린다면, AI 관련 연산에 쓰이는 엔비디아의 전력은 2027년에 최대 134Twh에 달할 것이란 예측도 나옵니다. 이는 네덜란드, 아르헨티나, 스웨덴 등의 연간 전력 소모량과 맞먹습니다.

    상용화로 앞으로 전력량 수요는 더욱 치솟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기기 공급의 필요성도 더욱 커지는데요. 데이터센터를 더 많이 짓고 AI 반도체를 더 많이 들여놓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송전망이 구축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입니다.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은 송전과 배전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되는데요. 송전과 배전을 위해선 전력 기기가 꼭 필요합니다. 전력 수요가 느는 것은 곧 전력 기기의 수요가 늘어난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고공행진 구리 가격

     

    구리는 전선과 변압기에 들어가는 핵심 원자재입니다. 전력망 확장을 위해선 구리가 필수죠. 이에 AI의 발전을 위해선 더 많은 구리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잇따릅니다. 원자재 중개업체 트라피구라는 AI 서버를 구동하기 위해 2030년까지 구리의 수요가 100만 톤 이상 늘어날 거라고 내다봤습니다. 급증하는 구리 수요로 구리의 몸값 역시 우상향의 상승곡선을 그립니다. 지난 27일, 런던금속거래소 기준 구리 선물(3개월물) 가격은 2년 만에 1만 달러를 돌파했는데요. 골드만삭스과 씨티은행은 내년 구리 가격의 전망치를 각각 톤당 1만 2,000달러, 1만 5,000만 달러로 높여 잡기도 했습니다.

    @HD현대일렉트릭

    활기띠는 관련 업체

     

    전력 수요 증가는 전선기업과 변압기 제조업체 등 전력망 인프라 구축관련 기업에도 덩달아 호재입니다. 중소형 변압기를 생산하는 제룡전기의 주가는 지난 26일 기준 연초 대비 207.2% 급등했는데요. 대한전선의 주가는 한 달 사이 46.7%, 가온전선은 39.5%, 일진전기는 50.3% 상승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전선 기업의 실적은 구리 가격에 좌우되기에 수주 시 구리 가격이 상승했다면 이를 제품 가격에 반영해 매출 확대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HD현대일렉트릭: 송전에 쓰이는 초고압 변압기를 비롯해 차단기 등 전력 기기를 생산하는 HD현대일렉트릭은 최근 실적 호조를 기록했습니다. 초고압 변압기는 송전에 쓰이는 전력 기기로, HD현대일렉트릭은 북미와 중동 시장을 주요 수출국으로 삼는데요. 최근 북미와 중동 지역에서 고변압기 물량의 매출이 늘어나면서 전력 및 배전 기기를 중심으로 성장세가 이어지는 모양새입니다. 올해 초 전력 생산 설비 확충에 투자해 생산 능력을 현재보다 약 두 배 늘릴 거란 계획도 밝혔죠.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주가는 2년 전과 비교해 무려 1,000% 이상 뛰었습니다(4월 25일 기준). 여기에 2022년부터 높아진 변압기 단가와 환율은 실적 증대에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올 1분기 16.1%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전력 기기 업체로는 이례적인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달성했습니다.

     

    효성중공업: 마찬가지로 초고압 변압기, 배전 기기 등 전력 설비를 생산하는 전력 분야 사업을 주력으로 합니다. 북미, 인도, 유럽 등 전 세계 시장에 변압기를 납품하며, 최근 전력 기기 산업 호황에 힘입어 특히 초고압 변압기의 신규 수주가 이어지는 추세인데요. 신규 수주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98.6% 늘어난 562억 원을 기록했으며, 수주잔고는 작년 매출의 1.5년 치인 4조 1,000억 원 수준입니다. 증권업계는 연내 실적 호조세가 계속되면서 주가도 추가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내다봅니다.

     

    LS일렉트릭: LS그룹을 모기업으로 두는 LS일렉트릭은 구리 제련과 송전, 배전 등 전력 산업 전반에서 사업을 영위합니다. 특히 북미 지역을 기반으로 배전 사업과 초고압 변압기 사업에 집중하는 모습인데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실적 강세를 기록 중입니다.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 모두 작년 동기 대비 각각 6.4%, 14.6%, 57.9% 늘었죠. 수주 잔고는 작년 말 기준 2조 3,000억 원에서 올 1분기 2조 6,000억 원으로 증가했으며, 2020년 24% 비중을 차지했던 해외 매출 역시 작년 36%, 올 1분기 43%로 꾸준히 상승했습니다. 베트남 저압 전력기기 점유율 1위를 유지하는 등 동남아시아 전력 인프라 시장에서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모습도 돋보입니다. 지난 26일에는 사우디 정부와 전력 인프라 관련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꽃길

     

    전력 설비 업계의 황금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입니다. 거스를 수 없는 AI 열풍과 20년 만의 전력 설비 교체 사이클이 겹치면서 강세 사이클이 좀처럼 꺾이지 않을 거란 예측인데요. 일각에선 2030년 이후까지 이러한 전력기기 슈퍼 사이클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합니다.

    @pixabay


    국내 기업에 기회

     

    심화하는 미·중 패권 경쟁은 전력 설비 분야로도 옮겨왔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선 안보 문제를 이유로 중국 전력 설비 업체가 배제되는 분위기인데요. 국내 업체엔 희소식입니다. 미국 변압기의 중국산 비중이 2022년 12.4%에서 2023년 8.4%로 줄어든 반면, 한국산 비중은 같은 기간 5.1%에서 9.7%로 증가했습니다.
    특히 전 세계 변압기를 생산하는 업체 20여 개 중 초고압 변압기를 생산할 수 있는 업체는 HD현대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 등 5곳이 채 안 됩니다. 공급 능력의 한계로 수급 불균형이 지속되는 가운데 시장은 판매자 우위의 특성을 보이는데요. 주요 업체들은 생산능력(CAPA, 캐파) 확장에도 보수적이라, 급증하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에 최소 2028년까지 미국 내 변압기 공급 부족 현상이 계속될 것이며, 중·장기적으로 높은 가격과 수익성 구조가 유지될 거란 예측이 있습니다.

    여기에 미국의 노후 전력설비 교체 사이클도 전력 설비 시장의 성장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미국 내 에너지부에 따르면 미국 내 변압기와 전선의 70%가 설치된 지 25년이 넘었는데요. 지난 25일, 백악관은 미국 송전 용량을 확대하기 위해 향후 5년간 10만 마일(약 16만㎞)의 송전선을 업그레이드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반도체 공장과 AI 데이터센터 등에선 전력 공급이 24시간 이뤄져야 하는 만큼, 노후 전력 설비의 교체 수요는 더욱 커지기죠. 글로벌 조사기관 모더 인텔리전스는 미국 전력기기 시장이 연평균 6.4% 성장률을 보이며 2030년에는 그 규모가 64억 4,000만 달러(약 8조 5,000억 원) 수준으로 증가할 거란 전망을 내놨습니다.

    하반기에는 구리 등 원자재 가격과 환율의 변동으로 인한 우려도 존재합니다. 구리 가격이 계속 상승한다면 이익률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는데요. 업계의 실적 호황 배경엔 기록적인 고환율의 요인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하반기 금리 인하 등의 조치로 강달러 현상이 완화될 경우, 수익성은 가라앉을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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